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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중앙회에서 제공하는 중소기업 및 경제 관련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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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령 비서 대성그룹 전성희 이사
“목소리가 20대 같지 않나요? 호호호.”
늘 쾌활하고 낙천적으로 사는 대성그룹㈜ 회장 비서실 수석비서 전성희(全聖姬·62·사진) 이사.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지닌 그는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목소리만 들으면 20대 여성으로 착각할 만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찾아온 손님들이 가끔 날 보곤 ‘아까 전화 받은 젊은 여비서 어디 갔어요’라고 해요. 그러면 ‘잠깐 나갔다’며 시치미를 뚝 떼죠.”
매년 4월 마지막 주 수요일(올해는 4월 27일)은 세계비서협회(IAAP)에서 정한 ‘비서의 날’. 전엔 ‘차 끓이는 여성’ 정도로 인식되던 비서가 최근엔 최고경영자(CEO)의 주요 스태프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점점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 최고령 비서로 아직도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전 이사는 김영대(金英大·63) 대성그룹㈜ 회장의 ‘오른팔’과 같은 존재. 하기야 27년째 비서로 그림자처럼 보필을 하고 있으니 김 회장의 생각을 꿰뚫을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은 회장님한테 ‘예스맨’이어도 난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야단’도 치고 그래요.”
그가 비서가 된 건 1979년. 이화여대 약학과를 졸업하고 약사 자격증도 갖고 있던 전 이사는 과장급 월급을 주겠다는 김 회장의 제의에 비서직과 인연을 맺었다. 김 회장은 전 이사의 남편(지난해 작고한 서울대 철학과 심재룡 교수)과 친구 사이였다.
당시 상무로 재직 중이던 김 회장은 진급을 거듭하며 그룹 총수가 됐고 전씨도 비서실 수석비서로 이사급 대우를 받고 있다.
그는 그토록 오랫동안 비서직을 잘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철저한 자기관리 때문”이라고 답했다. 전씨는 환갑이 넘은 요즘도 매일 오전 6시 30분까지 회사에 출근하고 하루에 1시간 이상은 무조건 외국어 학습을 한다.
“비서는 CEO와 동반자 관계이며 자기계발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충고한 그는 “65세까지 비서를 하겠다”고 말했다.
[월요 인터뷰] '비서계 대모' 전성희 대성그룹 이사
'할머니 비서' '비서계의 대모'로 불리는 전성희 대성그룹 이사.1979년부터 27년째 김영대 대성그룹 회장(64)을 모시고 있는 국내 최고령 비서다.
목소리만 들어서는 63세라는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낭랑하다.
최근에는 지난해 작고한 남편(심재룡 전 서울대 철학과 교수)의 1주기를 맞아 애틋한 남편사랑을 담은 추모집을 냈다.
전 이사는 "비서는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계발을 통해 모시는 분의 '어시스턴스'이자 '비즈니스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 대성그룹 사옥 7층에서 전 이사를 만났다.
전 이사가 비서직에 입문한 것은 우연이다.
지난 79년 미국 유학을 마친 남편과 함께 귀국했을 때 남편의 대학친구였던 김 회장(당시 상무)이 "미혼 비서를 두었는데 모두 1년 정도하고 그만두더라.어디 오래 근무할 아줌마 없느냐"며 남편에게 추천을 부탁한 게 계기가 됐다.
"당시 남편은 시간강사였는데 봉급이 적어 네 식구 생활형편이 넉넉지 않았죠.남편은 대뜸 김 회장에게 '내 마누라를 써보라'며 즉석에서 추천했어요.
그래서 세브란스 병원 약사모집 면접을 포기하고 대성산업에 들어가게 됐어요"라고 전 이사는 비서 입문과정을 설명했다.
전 이사는 그로부터 지금까지 27년째 김 회장을 모시고 있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회장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어요.
김 회장은 저를 '미세스 심'(전 이사의 사내 별칭)이라고 부르면서 내가 회장직을 70세까지 할텐데 그때까지 같이 하자고 자주 말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창피해서 더 이상 못할 것 같다고 대답하죠."
그녀는 비서생활을 하면서 외국기업과의 비즈니스 협상을 성사시키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89년 독일의 헨켈에서 국내 합작선을 찾고 있을 때였죠.대성산업 대표로 독일에 가서 교육을 받고 조사보고서를 작성해 협상을 성공시켰어요.
이 회사가 지금의 대성C&S죠.이 때문에 김 회장은 저를 창사 멤버라고 부릅니다."
전 이사는 김 회장의 끈질긴 집념을 보여주는 일화도 살짝 공개했다.
"그러니까 90년이었지요.
당시 한 직원이 50억원을 횡령해 미국으로 도주했는데 회사에서는 사실상 찾는 것을 포기했어요.
그런데 김 회장이 직접 미국에 가서 9개월간 곳곳을 뒤져 잡아온 일이 있죠.미국과 범죄인 인도조약도 맺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당시에 화제가 됐죠"라며 은근히 김 회장을 치켜세웠다.
전 이사는 임직원 중 사내 미화담당(청소) 아줌마에 이어 두 번째로 빨리 출근한다.
매일 아침 6시30분 회사에 도착,김 회장의 하루 일정을 정리하고 7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김 회장과 함께 외국어 공부를 한다.
프랑스어를 4년간 했고 지금은 중국어(중급)를 배우고 있다.
비서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커피 심부름에 대해 "커피 타는 것을 싫어하면 안됩니다.
커피를 타는 것은 집에 온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그 이상입니다.
커피를 나르는 것도 회사의 이미지를 나르는 것과 같다고 봐야죠"라며 자기 하기 나름에 달렸다고 전 이사는 강조했다.
"저는 한번 찾아온 손님에게는 커피에 프림과 설탕을 얼마나 넣는지 일일이 메모합니다.
이 손님이 다시 오면 알아서 커피를 내가는데 손님들도 감탄합니다"며 자신의 노하우를 귀띔했다.
"비서는 보통 1~2년 정도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며 "비서는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노력해서 모시는 분이 편안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비즈니스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이어 "누가 비서를 하더라도 비서일 이외 한 가지 일을 더 배워(가령 외국어를 배운다든지) 전문지식으로 무장하면 비서직도 오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들어도 안 들은 척,알아도 모른 척,봐도 못 본 척하고 인사 관련 이야기는 절대 회장님과 말하지 않는 불문율을 지키고 있다"며 비서의 철칙도 소개했다.
남편 이야기가 나오자 전 이사는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남편은 참 건강했는데….그날도 건강검진 결과를 보러 갔는데 그만….13개월 투병생활을 하다가 돌아가셨어요." 최근에 남편 1주기를 맞아 추모집을 냈다며 책을 소개했다.
전 이사는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전호인:全湖人)로 인해 만주에서 태어나 8·15 광복 이후 인천에 정착했다.
전 이사의 남편은 초등학교 친구다.
"인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남편은 반장,저는 부반장이었어요.
이후 헤어졌다가 이화여대 약대 2학년 때 남편이 기숙사로 찾아와 줄곧 만났죠."
69년에 결혼해 1남(우람·30) 1녀(소담·34)를 뒀다.
그녀는 "아빠(남편을 부르는 호칭)가 살아계셨을 때 비서생활을 65세까지 하기로 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남편이 살아 계실 때 강원도 문막에 땅을 사 집을 짓고 자주 갔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63세 '왕언니 비서'… 딸도 동료직원
국내에선 드물게 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모녀가 있다. 대성그룹 김영대 회장의 수석비서인 전성희 이사(63)와 건설부문 심소담(34) 계장이 주인공이다. 심 계장이 지난해 9월 이 회사 설계담당 경력직으로 입사하면서 7개월째 모녀가 한솥밥을 먹고 있다.
전 이사는 국내 최고령 비서로 유명하다. 그는 37세 때인 1979년 대성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교환교수로 나간 남편(고 심재룡 서울대 철학과 교수)을 따라 캐나다에 있었던 2년을 빼고 꼬박 25년간 김 회장을 모셨다. 김 회장 눈빛만 봐도 오늘 할 일이 뭔지 알 정도가 됐단다.
그의 입사는 우연히 이뤄졌다. 이대 약대를 졸업한 뒤 인천 인성여고 교사를 하던 그는 남편 유학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10년간 하와이에서 살았다. 1979년 귀국했지만 대학 시간강사로 일하던 남편의 월급만으론 생계가 막막했다. 대학병원에 취직하려는데 남편 친구인 김 회장이 비서로 일해달라는 제안을 해 왔다. 약사 월급보다 좀 더 주겠다는 얘기에 선택한 길이 평생 직업이 된 것이다.
그는 '비서계의 대모'나 '왕언니 비서'로 불린다. 비서를 오래했다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손님 응대나 전화 연락 등 흔히 생각하는 비서의 역할을 뛰어넘어 김 회장의 일급 참모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89년 독일 헨켈사가 국내 합작선을 찾고 있을 때 전 이사는 회사 대표로 독일에 가 교육을 받고 조사보고서를 작성해 협상을 성사시켰다. 김 회장이 쓰는 영문 편지를 손보고, 구상 단계인 사업의 진행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하지만 '비서는 비서여야 한다'는 게 전 이사의 철칙이다. 그는 "들어도 안 들은 척, 알아도 모른 척, 봐도 못 본 척하고 인사 관련 얘기는 절대 회장에게 말하지 않는다"며 "CEO가 안정된 상태에서 최선의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게 비서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직업관은 그가 손님들에게 내놓는 커피 한잔에도 담겨 있다. 그는 찾아온 손님마다 커피에 크림과 설탕을 얼마나 넣는지 일일이 메모한다. 다시 방문한 손님은 알아서 내오는 커피 맛에 감탄하게 마련이다.
전 이사의 이런 면은 딸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심 계장은 이대 1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일리노이대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졸업 뒤 미국에서 설계사로 일하면서 다양한 건축물을 짓는 데 참여했다. 부친 병세가 나빠진 2004년 귀국해 국내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다 전 이사 권유로 대성그룹 문을 두드렸다. "어머니가 다니던 회사여서 어릴 때부터 좋아 보였다"는 게 지원 동기다.
하지만 그는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전 이사 얘기를 한 줄도 넣지 않았다. '공사(公私)를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회사에선 아는 척도 안 하지만 밖에선 서로 많은 배려를 한다. 서울 신림동 집에 같이 사는 두 사람은 출퇴근을 같이 한다. 아침엔 전 이사의 출근 시간에 맞춰 심 계장이 일찍 나가고, 저녁엔 전 이사가 심 계장을 한시간 가량 기다려 늦게 퇴근한다. 전 이사는 심 계장에 대해 "집에선 효심 깊은 딸이고 밖에선 똑소리 나는 신세대 직장인"이라며 "너무 늦지 않게 배필을 찾았으면 하는 게 유일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62세 여비서와 28세 꽃미남 “우린 환상의 커플”
대성그룹 김영대 회장 비서 전성희·김탁희 씨
전통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서울 인사동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대성그룹 본사.
1호관 7층 김영대 회장실에 처음 들른 사람은 누구나 놀라게 마련이다. 손님을 맞는 여비서가 만 62세의 여성이다. 바로 국내 최장수이자 최고령 비서로, ‘비서계의 대모’로 통하는 전성희 수석비서(이사대우)다.
“목소리만은 20대 같지 않나요?”라고 반문하며 함박 웃는 전 이사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지녔다. 전화 목소리만 듣고는 누구나 젊은 여성으로 착각한다고.
그뿐만이 아니다. 전 이사의 파트너는 28세의 젊은 남성이다. TV에서 봤음직한 꽃미남이다. 김 회장 비서실에는 이 두 사람만 근무한다.
같은 대성그룹 내에서도 유독 김 회장실만 그렇다. 다른 방에는 젊은 여비서들 일색이다.
최고참·최고령 비서와 신참 비서의 조합으로, 자연스럽게 멘토링 교육훈련이 이루어진다. 더욱이 연령차가 무려 34세나 되는 연상녀-연하남 커플이라니….
“젊은 남자가 하기엔 어려운 비서 일을 잘 해내고 있어, 너무 귀여워요.”(전 이사)
“세상변화를 아주 신속하게 받아들이세요. 세대차이를 거의 못 느낍니다.”(김탁희)
칭찬릴레이를 펼치는 두 사람은 환상의 커플이다.
미세스 여비서 원한 김 회장과의 찰떡 궁합
전 이사가 김영대 회장을 모시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79년 4월부터다. 만 27년째다. 통상 비서로서는 은퇴할 나이인 37세에 뒤늦게 비서 일을 시작한 동기는 작고한 남편(심재룡 전 서울대 철학과 교수)의 영향이 크다.
이화여대 약학과를 졸업, 약사면허를 소지한 그녀는 약국을 해 볼까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남편의 서울대 인문대 동문모임인 ‘두레회’ 멤버로 친구처럼 지내는 김 회장(당시 대성산업 상무)이 남편에게 쓸 만한 여비서 한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젊은 처녀는 쓸 만 해지면 결혼을 핑계로 그만둔다”며, 미세스를 원한다는 것.
시간강사였던 남편의 박봉 때문에 직장을 구하던 그녀가 그 자리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1∼2년 하다가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하다 보니 최장수 최고령 비서가 되고 말았다.
“약사보다 월급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무슨 일을 해도 꾸준히 하는 제 성격과 비서 일이 맞았던 것 같아요. 비서가 ‘팔자’인가 봐요”
아무리 팔자소관이라고 해도, 경영자와의 찰떡궁합이 없었다면 오래 할 수는 없었을 터.
故 심 교수를 잊지 않고 있는 김 회장은 지금도 전 이사를 ‘미세스 심’으로 부른다. 김 회장의 마음속까지 꿰뚫고 있는 전 이사는 단순한 비서가 아니다.
모두가 ‘예스맨’이 되더라도, 전 이사는 김 회장이 잘못할 경우 따끔한 질책을 서슴지 않는다. “좋은 비서가 훌륭한 CEO를 만들고, 비서와 CEO는 동반자 관계”라는 것이다.
한편 김탁희 씨는 4년 전 인사과에서 스카우트된 비서다. 김씨는 고졸 사원이다. 당시 대졸자 출신 비서를 내보내고 그가 대신 뽑혀 올라왔는데, 평소 전 이사가 눈여겨보던 친구였다. 김 회장이 “젊은 여비서보다 남자비서를 알아 보라”고 먼저 제의했다고 한다.
“비서는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이라고 하잖아요. 젊은 남자가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너무 잘해내고 있어 회장님도 대 만족이세요.”
전 이사의 칭찬은 급기야 김 회장에게로 이어진다. “회장님은 인자하면서도 일에 대해서는 철두철미하고 정확하며, 항상 공부하시는 분입니다.”
사실 두 비서의 발탁과정을 보면, 주머니 속의 송곳이 드러나듯, 김 회장의 장점이 엿보인다. 학력과 나이 등 편견에 얽매이지 않는 열린 사고,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돋보이는 것.
‘ 효자 집에서 효자 난다’… 모습만 봐도 배워
전 이사와 김탁희 씨는 환상의 하모니를 연출해 내는, 전형적인 멘토링 커플이다.
김씨는 전 이사의 오랜 경험과 지식, 프로의식을 자연스럽게 몸으로 체득하고, 전 이사는 아들보다도 어린 김씨를 보며 젊은 활력을 재충전하고, 컴퓨터 등 첨단 IT기기에 익숙해진다. 결코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관계가 아니다.
“다른 것은 제가 가르치는데, 컴퓨터는 제가 배워요. 이메일에 이어 이젠 휴대폰 문자메시지도 능숙하답니다”라는 전 이사의 자랑에, “60대 어르신들 중 컴퓨터를 이만큼 잘 다루시는 분은 처음 봤습니다. 일을 위해서 항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이사님의 프로의식을 배우고 싶습니다”라고 김씨가 받는다.
그런 두 사람이 같이 공부하는 것이 있다. 바로 외국어다. 전 이사는 매일 아침 6시 30분이면 출근, 아침정리를 마치고 7시 30분부터 외국어 공부에 몰두한다. 영어는 이미 마스터했고, 요즘은 5년째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김씨 역시 영어공부에 열심이다.
김씨는 “처음에는 오너를 모신다는 점에서 부담감이 많았습니다. 이사님이 많이 커버해 주셔서 버틸 수 있었죠”라며 “효자 집안에 효자 난다고, 일일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사님 하시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또 김 회장은 오래 모셔서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임원들의 생각까지 정확히 읽어내는 전 이사의 노하우가 가장 부럽다고.
“과거에는 손으로 하던 명함정리를 지금은 컴퓨터로 하는 식의 차이는 있어도, 비서가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마찬가지”란다. 이런 점이 34년의 나이 차이를 넘어, 두 사람이 세대차이를 느끼지 않게 하는 요인인 듯 하다.
다만, 휴대폰이 보급된 이후 CEO가 휴대폰으로 개인적 약속을 하고 비서에게 말해 주는 것을 깜박 잊으면, 일정관리상 펑크가 종종 생긴다고….
“회사 내 인사관련 문제는 절대 입에 올리지 않는다는, 처음 비서일을 시작하면서 회장님과 한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어요”라는 전 이사의 말에서, 비서업무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일과꿈] "美처럼 비서출신 女CEO 나와야죠"
아직도 기업의여비서를 '차대접하고 전화 받는 직업'으로만 여기는 사람이있다면 빨리 마음을 고쳐먹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비서라는 이름보다 '최고경영자 스태프'(CEO staff)라는 명칭이 보편화 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지고 있으며 비서 출신 여성들이 중역으로 활약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대성그룹㈜ 회장 비서실 수석비서인 전성희(60) 이사는 경력 35년째인 '전문 여비서'의 원조. '전 이사'보다 '미세스 심'(여기서 '심'은 남편인서울대 철학과 심재룡 교수의 성)으로 통하는 '국내 최고령 비서'인 전씨가 후배 여비서들과 비서의 세계에 대한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함께참석한 여비서 중 중간 언니 격인 유꽃님(42)씨는 대성C&S 대표이사 비서를 10년째 맡고 있다. 또 막내 최소연(25)씨는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지난해 말부터 대성산소 대표이사 비서로 일하고 있는 초년병.
같은 회사에 근무해 서로 얼굴은 알지만 같이 모여 얘기를 나눠본 적이한번도 없었던, 최고 35년 나이차 '여비서 3대의 대화'는 '미세스 심'의농담으로 부드럽게 시작됐다.
“제 목소리가 젊잖아요. 전화 목소리만 듣고 저를 젊은 비서라고 짐작했던 사람들이 회사에 방문해서 ‘아까 전화 받은 비서는 어디 갔나요?’라고 물을 때가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그 비서 아가씨는 잠시 외출했는데요’라고 시치미를 뗀답니다.”
회사에서 ‘전 이사’ 보다는 ‘미세스 심’(여기서 ‘심’은 남편인 서울대 철학과 심재룡 교수의 성)으로 통하는 ‘국내 최고령 비서’ 전성희씨가 유머로 자리를 부드럽게 한다. 같은 회사에 근무해 서로 얼굴은 알지만같이 모여 얘기를 나눠본 적이 한번도 없었던, 최고 35년 나이차 3명의 여비서들의 대화가 이렇게 시작됐다.
비서는 회사 내 야당
“모시는 분이 화가 나셨을 땐 어떻게 하세요? 전 공연히 무서워져서 간신히 차 한잔 타드리는 게 고작입니다.” 막내 최소연씨가 묻는다.
“모른 척하는 게 제 방법입니다. 다만 더 화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죠.”비서 경력 10년차의 유꽃님씨는 대범한 대처법을 내놓는다.
전씨는 “상황에 따라 대처 방법이 달라요. 정말 화가 나셨을 땐 차를 가져 다 드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대체로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직원들이 긴장하고 있습니다’라고 솔직히 말씀 드리면 스스로마음을 가라앉히십니다”라고 말한다. 25년을 같이 호흡을 맞춰온 관록이묻어나는 해법이다.
김영대 대성그룹 회장과 전씨 남편인 심 교수는 대학동창 사이. 그 인연으로 전씨는 79년 남편이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당시 상무이던 김 회장비서로 입사했다. 그 후 94, 95년 캐나다에 교환교수로 간 남편을 따라 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쭉 김 회장을 보필해왔다. 그래서 김 회장은 종종 전씨를 “제가 모시는 비서입니다”라고 소개한단다.
전씨는 “비서는 최고경영자(CEO)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임원들도 말 못하는 ‘듣기 싫은 소리’를 CEO에게 전할 수 있어야해요. 전 비서는 CEO의 파트너라는 자부심으로 이 일을 해왔습니다”라고말한다.
내가 탄 커피는 회사의 이미지
“대성그룹 입사 전부터 ‘경영도 조언할 수 있는 비서 미세스 심’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서직에 지원했지만, 막상 차 접대를 하는것은 솔직히 아직까지도 썩 내키지 않습니다”라고 막내 최씨가 털어 놓는다.
전씨는 웃으며 “집에 손님이 왔을 때 주인이 아닌 가정부가 차를 낸다면대단한 실례”라며 “주인의식을 갖고 내가 탄 차가 우리회사의 이미지라는 생각을 가지라”고 충고한다. 전씨는 방문한 손님의 커피 취향을 일일이 메모해 두었다가, 다시 방문할 때 입맛에 맞는 커피를 내놓으면 어려운거래도 척척 풀린다고 귀띔한다.
유씨 역시 “차 접대는 비서의 중요 임무 중에 하나”라는 데는 전씨와 같은 생각이지만 “자신은 커피를 낼 때 프림과 설탕을 따로 내놓아 방문객이 스스로 맛을 조절하게 한다”고 얘기한다.
흔히 여비서의 대표적 임무로 알고 있는 ‘차 접대’를 놓고 세대간에 미묘한 시각차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비서의 꿈은 HP회장 피오리나
이들 사이에 세대차가 존재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3명 모두 3개 국어에능통하고 전문 비서로서의 경력을 착실히 쌓고 있지만, 자신의 일과 꿈에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보인다.
전씨는 “하와이 유태계 보석회사에서 첫 직장생활을 할 때 아버지를 돕던비서가 사장인 된 아들을 가르치며 일하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36세에처음 비서생활을 시작할 때도 전혀 망설임이 없었고, 지금까지도 이 일이즐겁다”며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비서직은 길어야 3~4년 정도 한 후이직해 안타깝다”고 말한다. 비서직이란 분명 조역이지만 주연을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역할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유씨는 “여러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후 30대 이후에 맡는 것이좋을 것 같다”며 “비서가 전문직으로 자리잡으려면 종합조정능력을 갖춰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짧더라도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후배 최씨에게 “비서직에 자신의 역할을 한정하지 말고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라”고 충고한다.
막내 최씨도 “비서는 회사의 전반적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자리라 때문에일을 빨리 배울 수 있지만, 자칫 전문성을 쌓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초조하다”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현장에서 일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대성그룹 비서 3명의 ‘일과 꿈’은 서로 달랐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우리나라에서도 미국 휴렛팩커드사의 칼리 피오리나 같은 ‘비서출신 CEO’가 탄생할 것이라는 믿음은 공유하고 있었다.
▶‘60세’에 여전히 ‘여비서’자리 지키고 있는 대성그룹 이사 전성희
“사무실을 찾는 손님들 중에 할머니 비서를 보고 놀라는 사람이 많아요”
대성그룹 회장 비서실의 전성희씨. 두 아이의 엄마이던 서른일곱에 여비서의 길로 접어들어 나이 예순이 되도록 같은 자리를 23년째 지키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대학교수의 꿈을 접고 이사대우 전문비서가 되기까지 그의 특별하고 남다른 일에 대한 사랑이야기.
올해 60세가 된 전성희씨는 대성그룹 김영대회장의 여비서다. 회장실을 처음 찾는 방문객들은 나이든 여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낭랑한 전화 속 목소리의 주인공이 전씨라고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전화 목소리만 듣고 젊고 예쁜 비서인줄 알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손님 중에는 나이든 제 모습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좀 전에 전화를 받던 여비서는 어디 갔어요?’라고 묻기도 해요. 그러면 전 시침을 딱 떼고 ‘그 비서 아가씨는 잠시 외출했는데요’라고 대답하고는 속으로 웃어요. 정말로 제 목소리가 그렇게 낭랑하게 들리나요?”
목소리가 ‘젊다’는 칭찬이 싫지 않은 그는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내 목소리가 생기 있고 톡 쏘는 사이다처럼 감칠맛 나느냐”고 묻곤 한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나이가 들었어도 ‘아직도 20대 못지않다’는 농담이라도 듣고 싶은 마음 말이에요. 그런데 이 나이에 목소리가 예쁘면 얼마나 예쁘겠어요. 낭랑한 목소리가 비서 업무의 전체를 대신하는 것도 아닌데…. 사실은 비서실에 왔다가 놀라는 사람들이 많아요. 여비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날씬하고 예쁜 여자들인데 저처럼 나이 많은 할머니 비서를 만났으니 놀랄 만도 하지요.”
자칭 할머니 비서인 그가 비서업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3년 전, 그의 나이 서른일곱 살 때였다. 결혼 후 일주일 만에 미국으로 먼저 유학을 떠난 남편(심재룡 서울대 철학과 교수)과 헤어져 지내다가 5개월 후에 하와이에서 만나 10년 동안 유학생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살다가 귀국한 직후였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만 받고 돌아오면 교수자리는 거저 생기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남편이 시간강사를 해서는 먹고 살기가 어려웠어요. 방학 때가 되면 쥐꼬리만한 강의료마저 끊겨서 제가 돈을 벌어야 되는 형편이었거든요. 신촌세브란스 병원의 약국에서 약사를 뽑는다기에 이력서를 넣고 취직을 준비하고 있는데 남편의 친구인 김영대 회장이 ‘처녀들은 남자가 생기거나 결혼을 하면 금방 회사를 그만둔다’며 ‘아줌마라도 좋으니 도망가지 않고 진득하게 일할 수 있는 비서를 소개시켜 달라’고 했던 모양이에요.”
남편은 김회장의 부탁을 받고 “우리 집사람이 어떻겠느냐”며 추천을 했다. 그는 비서직에 대한 매력이나 사명감보다는 취직하고자 하는 약국보다 월급이 훨씬 많다는 점에 이끌려 입사했노라고 털어놓았다.
“솔직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그만두리라고 마음먹었어요.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도 계속하고 싶었고, 대학강단에 서고 싶은 꿈이 있었죠. 교수가 되겠다는 소망을 간직한 채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요. 잠시동안만 이 일을 하겠다고 했었는데 23년 동안이나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회장님의 ‘트인’ 사고방식 때문이었어요. 여비서는 젊은 아가씨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하던 시절인데도 회장님은 겉치레보다는 ‘일’을 염두에 두고 여비서를 뽑았던 거죠. 입사당시에 서른일곱이었으니 그때도 늙은 축에 들었잖아요(웃음).”
“외모와 나이 대신 실력으로 버텼어요”
심교수와 전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반장과 부반장으로 만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소식이 끊겼던 두 사람은 대학교에 진학해 전씨의 소식이 궁금했던 심교수가 수소문을 통해 이화여대 약대에 입학한 것을 알고 연락을 취하면서 사랑을 키워 나갔다. 심교수가 공부할 때 전씨가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하자 심교수는 “공부를 계속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비서를 그만둬라. 내가 공부할 수 있도록 당신이 도와줬으니 나도 도와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교수의 꿈을 간직한 그에게 비서는 낯선 땅과 같았다.
“처음에는 힘들었던 업무가 차츰 재미있고 중요한 업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비서가 걸려오는 전화나 받고 차만 끓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일종의 전문직이거든요. 귀국한 이듬해 남편이 전임교수가 되어서 먹고 살 만한데도 이 일을 그만두고 싶지가 않은 거예요. 생각했던 것보다 매력적이었고 적성에도 잘 맞아서 교수의 꿈을 접었어요.”
그러나 그는 입사한 지 13년째 되던 92년에 캐나다 토론토대학에 교환교수로 가게 된 남편을 따라 캐나다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집안에서 살림하는 일이 회사에 나가 돈 버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면서 2년을 보냈다.
“집안일은 정말 해도 해도 표도 안 나고 힘들데요. 시시때때로 밥하고 반찬 만들어야죠, 집에 찾아오는 손님과 특히 한국 음식이 그리운 유학생들을 대접하면서 모처럼 주부의 임무를 수행하며 바쁘게 살았어요.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제가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 모두가 건강했고 유학생활을 마치자마자 함께 살았던 시어머님과 시이모님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두 분이 집안일과 아이들을 보살펴주셨기에 제가 밖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거죠.”
그는 자신의 성격이 “매사에 적극적이고 어떤 일이든 긍정적인 면을 먼저 생각한다”고 했다. 아이를 낳지 못해 소박맞은 시이모가 머물 거처가 없자 시어머니께서 “불쌍한 이모가 갈 데가 없으니 같이 살자”고 해 어른 두 분을 모시게 되었을 때도 불평불만을 늘어놓기보다 “시어머니의 말동무가 생겨서 오히려 잘됐다”고 할 정도였다.
“사실, 어른들을 모시는 게 힘들긴 해요. 그러나 그 일이 힘들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힘들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즐거움과 행복이 될 수도 있어요. 시어머님이 몇 년 전에 돌아가시면서 ‘이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잘 거둬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시어머님께 ‘걱정하지 말라’고 약속을 했어요. 요즘에는 큰딸이 미국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고 아들이 캐나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서 시이모님과 함께 노인네 셋이서 오붓하게 살아요. 그런데 나이는 들었어도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고, 배우고 싶은 것들은 욕심을 내서 배우게 되더라고요.”
고등학교를 전교 수석으로 졸업한 재원인 그는 캐나다에 있는 동안에도 고등학교 3학년 영어 이수과정에 등록하고 공부할 만큼 배움에 열정적이다. 배움에는 나이를 들먹일 이유가 없다는 게 그의 생활신조다.
“배움에 나이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시간이 날 때마다 뭐든지 배우려고 애썼죠. 전 회사일도 집안일처럼 하거든요. 그런 제가 다시 필요했는지 캐나다에 있을 때 회장님이 ‘미세스 심, 빨리 돌아와서 날 좀 도와줘요. 아가씨를 썼더니 결혼한다고 그만뒀고, 다른 사람을 써봤는데 영 마음에 들지가 않아요’라고 전화를 걸어왔더라고요. 캐나다에 갈 때는 다시 입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회사의 주식도 전부 팔고 퇴직을 했었는데…. 결국 회장님의 성화 때문에 캐나다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 만에 다시 출근을 했어요.”
김영대 회장은 자기 친구의 아내인 전씨를 ‘미세스 심’이라고 부른다. 김회장은 친구의 아내이기 이전에 사업의 동반자 역할을 맡아서 잘 처리해 준 전씨를 단순히 비서로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저희 그룹이 대성셀틱보일러 등 외국 기업과 합작회사를 설립할 때는 회장님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셨어요. 그때 제가 나섰어요. 바이어를 만나 협상도 직접 하고…. 열심히 하다보니 하던 일이 성사되더라고요. 언젠가는 회장님이 ‘미세스 심은 석사, 박사 따서 대학교수가 될 팔자가 아닌 모양’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나도 젊고 예쁜 비서와 함께 일할 팔자는 아닌 모양’이라고 말해서 박장대소를 한 적이 있어요. 지난해 타계한 대성그룹 창업주(고 김수근씨)도 제가 일하는 모습을 보더니 ‘나도 미세스 심 같은 아줌마 비서를 쓰고 싶다’고 해서 아줌마 비서로 교체한 적이 있는데 몇 달이 못 가서 둘째아이를 가졌다며 그만두더라고요(웃음).”
회장 대신해 외국 바이어와의 협상도 직접 이끌어
그가 김회장의 적극적인 신임을 받은 것은 ‘친구의 아내’라는 친분이 끼어들 틈도 없이 남다른 부지런함과 끊임없는 노력 때문이다. 그는 새벽에 청소하는 아줌마 다음으로 회사에 일찍 출근해 모닝커피를 마시며 상쾌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음악을 들으며 하루 일과를 준비한다. 관악구 봉천동에 위치한 집에서 새벽 5시40분에 출발하면 회사가 있는 종로구 인사동에 6시10분이면 도착한다.
“서울시내에서 도로가 막히면 대책이 안 서잖아요. 조금만 일찍 서둘러 출근하면 차가 막혀서 고생하는 일도 없고 지각할 염려도 없어서 일석이조예요.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남들보다 10분 먼저 출근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습관이 되면 참 좋은 것 같아요.”
그러나 그가 일찍 출근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출근하자마자 회장의 일정을 점검해 책상 위에 올려놓고 당일 열리는 회의에 필요한 자료와 서류 등을 준비한 다음 7시10분에 출근하는 김영대 회장과 함께 학생으로 돌아가 외국어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회장님이 사업은 물론,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은 분이에요. 사업상 필요하면 통역을 쓸 수 있는데도 어학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거든요. 지금까지 회사에서 회장님과 함께 배운 외국어가 일본어, 중국어, 불어 등이에요. 영어를 비롯해 4가지 언어는 비서실에서 비서로 일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만큼 할 수 있어요. 이 나이에 실력이 없다면 버틸 수 있겠어요, 안 그래요?”
회장의 일과를 꼼꼼히 체크하는 것은 물론 전화를 받고, 회장실을 방문한 손님에게 차를 접대하는 일은 그의 기본 업무에 속한다. 회장의 결제가 필요한 업무는 먼저 그의 손을 거쳐야 한다.
“지난해까지 손님들이 오시면 직접 차를 탔는데 올해부터는 그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하고 있어요. 그래도 중요한 손님이 오면 제가 직접 차를 끓여서 들고 갑니다. 이십 년이 넘도록 제가 끓인 커피 맛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가끔은 회장님이 ‘미세스 심이 탄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특별히 주문을 하기도 해요.”
우리나라에서 현역 여비서 중 최고령에 속하는 그는 톡톡 튀는 목소리와 함께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머리 모양만 놓고 보면 남성인지 여성인지 분간이 안 될 만큼 짧은 머리는 첫딸을 낳은 직후인 72년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미국에서 첫딸을 낳았을 때 몸조리를 해줄 사람이 없었어요. 날씨는 더운데 머리는 어깨 위를 찰랑거려서 무척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커트를 할 수 있도록 면도날이 들어 있는 빗을 사서 직접 머리를 잘랐어요. 아이 키우고 생활하기에 편리한 머리 모양을 궁리하다보니 일단 짧아야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자꾸 자르다보니 이런 헤어스타일이 되었는데…. 남들은 이상하다고 해도 전 이 머리가 편해서 30년 동안 헤어스타일을 바꾸지 않았어요.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제 손으로 자르지 않고 한달에 한번씩 미장원을 이용한다는 것뿐이에요.”
“헤어스타일이든, 사는 방식이든 겉치레에 치중하기보다는 실용적인 게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말하는 전씨의 회사내 공식직함은 이사대우 수석비서다. 지난해 차장대우였던 그가 이사로 고속(?) 승진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평사원일 경우 회사가 정한 나이에 맞춰 정년퇴직을 해야 하지만 임원은 정년이 없기 때문이다.
“이 나이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할 뿐이죠. 남들은 구조조정이다 뭐다 해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나가라’는 압력은 받지 않았으니…(웃음). 동갑내기인 남편이 퇴직하는 예순다섯까지는 할 수 있다면 일을 계속 하고 싶어요. 그 다음엔 남편과 함께 여행도 다니고 구혼재미에 빠져볼까 해요. 고학력 주부들이 취업한다는 게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저를 봐요. 아줌마 비서로 시작해서 할머니 비서가 되었잖아요.”
예순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일에 대한 열정이 살아 숨쉬는 전성희씨. “나이에 구애받지 말고 어떤 일이든 집안일처럼 꼼꼼하게 처리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아줌마라 하더라도 어디에서든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의 당당한 미소가 맑은 목소리만큼 참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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